Seoul, 2008 © planetzune : Leica R6.2. 35-70 f4 macro. Rollei Retro 100.

당신은 그때,
 
환상이란 언제나 끝나게 마련이라고, 
그런 뒤 남는 것은 환멸(幻滅)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따지고보면 불가에서 말하듯, 
무릇 삼라만상 모두가 하나의 환상일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 환상이란, 결국엔 언제가 되었든 끝을 맺게 되어 있겠지요. 
당신과의 시간들도 그러했습니다. 

황인숙 시인이 그랬던가요. 
사람의 만남이란 본디, 
"이해한다는 오해에서 시작해 오해했었다는 이해로 끝난다"고 말이지요.
어쩌면 시작과 끝은, 그렇게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며
끝나지 않는 무한원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남은 것이 환멸 밖에 없었을까요.
환상이 우리의 공허를 채워주었던 시간들의, 
그 찬란한 과거들은 없었던 겐가요.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들도, 
언젠가 은하 건너 저 과거의 시간들로부터 
우리를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요.
환상이 다한 자리, 지독한 환멸 만이 아니라
어찌보면 가장 찬란한 그림자들이 살며시 내려앉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느 휴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당신의 말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어차피 사라지게 마련인 환상이라면, 
그 환상이 다하기 전에 뜨거운 기억이라도 새겨놓아야 하겠지요. 
가장 뜨거웠던 별들이 가장 밝게 빛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아직 움도 트이지 않은 나뭇가지 뒤로
가뭇없이 사라질듯 날아오르는 새떼들을 보며
어느날의 환상이 기억으로 새겨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또다른 환상으로 이 난감한 生을 버텨낼 수 있기를, 
당신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환상이 끝난 자리, 
한때의 열병과도 같은 열정이라도 
식지 않은 채로 당신의 가슴에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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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이 필름생산을 중단한다느니, 하는 소식이야
벌써 몇년 전부터 계속돼 왔던 터다. 
하지만 오늘, 코닥크롬의 판매를 드디어 중단한다는 뉴스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사실 코닥크롬을 제대로 써본 기억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올림픽 때인가 이후로
현상소가 없어져 버렸다 했고, 
코닥크롬은 흔한 슬라이드 필름들과는 현상 방법이 달라서, 
코닥크롬을 제대로 현상하려면
미국에 택배를 보내야 한다는 어이없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닥크롬은, 
폴 사이먼이 노래했듯 필름에 대한 하나의 상징 아니었던가. 
한국에서야 여러모로 귀찮아서 쓰지 않았지만, 
미국에 한번 가게 되면 써보겠노라고 생각했던, 
그러니까 현실이라기보다 꿈의 필름에 가까왔던 필름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꿈의 상실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하기는 일포드도, 아그파도, 포마팬도 다 문을 닫고, 
(물론 중국이나 일본 회사들이 인수해 다시 필름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코닥크롬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현상과 인화를 기다리던 설렘도 사라지는가. 

하지만 무엇보다, 
최근 일본에다가 4X5판 필드 카메라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와중이라
필름의 좋았던 호시절을 상징하는 필름이 단종된다니
더 안타까울 따름이고, 
이거이거, 몇번 쓰지도 못하고 
필름이 없어서 카메라를 폐기처분하는 상황이 오는 거 아냐, 싶기도 해서,
괜히 마음이 안절부절이다. 

뭐, 당분간은 필름이 모두 사라지는 일은 없을테고, 
더군다나 판형에서 디지털이 도무지 따라올 수 없는 
4X5판 이상의 대형 포맷들이야 
단종된다 해도 제일 나중에 단종될 테지만, 
여하간 필름을 쓰는 것이 
점점 더 번거로운 일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꿈은, 
집에 확대 인화기까지 갖춘 
암실 하나 꾸미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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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과연, 진실을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진실의 특징 중 하나는, 
총체성이 아닐까. 
표면을 넘어선 이면의 사실들, 
드러난 관계 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미처 생각지 못한 관계들이 서로 그물망을 이루면서
진실이란 밝혀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사진이란, 
사진의 한 컷이란 얼마나 피상적이고 파편적인가.
전과 후의 시간들은 생략되어 있고, 
공간상으로도 상하좌우에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프레임을 정하는 순간, 
프레임 바깥의 모든 시공간적인 사실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맥락이 사라져버린, 
마치 단말마와도 같은 순간. 
기억이란, 그리고 그 기억의 진실이란
지속(duration)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지켜보고, 겪어내고, 살아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렇다면, 
사진에 진실이 담길 수 없다면, 
아니 백번 양보하여 사진에 담기는 진실이
서로 다른 맥락 속에 왜곡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단편적 진실이라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진실을 담는 매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미 사진은 동영상에 자리를 내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진이 갖는 힘은, 
더이상 진실을 보여주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어떤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다. 
사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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