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문득 멈춰 생각에 잠긴다.
때로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처럼, 종종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기억.
두 사람이 아는 사이였을까? 혹은, 전혀 모르는 남이었을까?
사실 사진이란, 아주 일부분의 진실일 수밖에 없다.
모든 장면, 모든 시간, 모든 여기-이곳(hic et nunc)은
담길 수 없다.
진실보다는 과장된 현실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러니 여자가 남자를 알았는지,
혹은 알고 싶어했는지,
시간의 앞과 뒤도, 공간의 앞과 뒤도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무한히 상상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사진의 매력일 수 있다.
그런데 어쨌든 이 풍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자의 심리상태보다는,
저기 유령처럼 미세한 흔적만을 남기며 지나가는 남자다.
남자는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남자들은 늘 그렇다.
소중한 무엇이 곁에 있음을 망각하고,
늘 다른 곳을 찾아 방황한다.
언제나 남자들은 어딘가에 그 자신만의 섬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어쩌면 이 지긋한 일상에서
화면 속의 남자처럼 실체라기보다 그림자와도 같이,
그저 여성들의 세계에 일종의 유령으로서
연기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남자를, 여자는 과연 뒤돌아볼까?
따라올까, 그도 뒤돌아볼까, 그가 아는 사람이었을까...
이 망설임의 순간들,
만약 뒤를 돌아보게 된다면
되돌릴 수 없을 미지의 사건들이 일어날 것 같은 순간이다.
남자의 발길은 단호하지만,
여자는 우두망찰 길 위에 멈춰 생각에 젖는다.
오르페우스나 롯의 아내가 돌아보았을 때
그들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음을 떠올려본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은 호기심과 모종의 불안함,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여자는 과연 뒤를 돌아보게 될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겨울날의 청계천변,
그렇게 길 위에서 엇갈려 간다.
태곳적부터 여자와 남자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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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서울, 2006 | Kodak T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