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9. Sat ~ 2009. 9. 20. Sun


나는 이별에 서툴다. 

아니, 어쩌면 만남에 서투른 지도 모른다. 

만나서 마음을 여는 데 오래 걸리니

다시 마음을 접어야 할 때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여행에서 어떤 도시와 나라를 만나는 것은

늘 마음을 접어야 할 이별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법이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기한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줄곧 ‘리스본’이라는 영어식 표현을 썼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은 리스보아(Lisboa)라고 부른다. 

살짝 스치듯, 안으로 궁글리는 소리로 
‘...보아’라고 끝나는, 

리스보아, 의 발음을 듣고 있으면

왜 포르투게스를 유럽어 중에 
가장 발음이 아름답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여행 아흐레째가 되어서야, 
이렇게 떠날 때쯤이 되어서야 

리스본은 ‘리스보아’가 되고 
‘Thank you’는 ‘오브리가두(Obrigado)’가 되며

‘Bye’는 ‘아데우시(Adeus)’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포르투를 떠나 리스본으로, 

다시 이튿날이면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포르투의 마지막 날. 




포르투에서 출발한 열차는, 

리스본의 아폴로니아 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리스보아에서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트램에 몸을 싣고 멍하게 시내를 돌아다녔다. 

가끔은 미처 구경하지 못한 곳이 눈에 띄면

얼른 내려 잠시 산책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발길은 아우구스타 거리와 

코메르시우 광장을 향한다.  




포르투갈, 그리고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건너왔을 것이 분명한 청년 두 명이

어느 박물관의 Africa 전시회 광고 문구 앞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산타 주스타의 엘리베이터와 골목에도 

기울어가는 햇살이 드라마틱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다. 



왠일인지 약국 간판에는 온도계가 설치돼 있고.



누군가의 낙서는 사람들에게 실없는 웃음을 던져주는 곳.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곳 역시,

리스보아다.




그리 크지 않은 광장에

밤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쉬운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요일 아침 8시 비행기. 

호텔 숙박비에 포함된 
조식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공항으로 향한다. 


아마 내가 포르투갈을 처음으로 접한 건, 

어릴적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었을 때였을 것이다. 

제제가 많이 따랐던 (그러나 사고로 숨진) 아저씨가 
포르투갈 출신이었고,

그래서 별명이 ‘뽀르뚜까’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두를 듣다가 갑자기 떠나고 싶어져서, 

그리고 유럽의 최서단에 위치한 호까곶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싶어 갔던 포르투갈. 


열흘의 일정은 그렇게나 빨리 흘러갔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3,000여장의 사진과 어느덧 희미해져 가는 기억,

그리고 몇가지 기념품들 뿐. 




나는 여전히 이별에 서툴다. 

떠나온 지 두달도 더 된 이 나라에 

여전히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가 보다. 

여행기가 이리도 오래 걸린 이유에는

내 게으름도 한몫 했지만, 

작별의 타이밍을 잘 찾지 못하는 

내 성정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낯선 매력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1년쯤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러면 리스본과 포르투,

그 골목길들에 두고 온 마음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리라.  

 


2009. 9. 19. Sat.


아무래도 포르투의 마지막 아침을 

그저 기차에 몸을 싣는 것으로 갈음하기에는, 

내가 포르투에 너무 깊숙이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랑스러운, 
고풍스러운 도시의 매력이란!






그래서 짧은 일정 탓에 미뤄놓은, 

‘도우루 강의 뱃놀이’를 하기로 결정.




강을 낀 도시라면 으레 유람선이 있기 마련. 

파리에서 탔던 므슈 바토도 그랬고, 

한강 유람선도 마찬가지일테다.

어떤 면에서는 강을 따라 그 도시를 맛본다는 건

그 도시가 형성된 과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행위일 것.






도우루강의 보트는 대개 9시부터 5시까지, 

한시간 간격으로 배를 띄우고 있었다. 

약간의 기다림, 그리고 설렘.



배를 탈 무렵엔 하늘이 좀 컴컴해졌고, 

빛은 조금 더 드라마틱해졌다.








곳곳에 카누를 타는 사람들과, 

강 한가운데 있어야 눈에 띄게 마련인 풍경들과, 

배를 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 





남들이 한다고 모두 따라서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도시든 남들이 해보는 건 
꼭 해봐야 하는 게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이른 아침의 도우루강의 뱃놀이 같은. 





2009. 9. 18. Fri.


살다보면 그런 법이 있는 것이다. 

내용은 얼마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오히려 서너 배는 되는 경우.


나의 포르투갈 여행 역시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 

겨우 열흘의 일정이었으나 
여행기는 하염없이 늘어진다. 

대개는 나의 게으름이 원인이겠지만

어쩌면 이 여행기를 끝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내 마음 속 포르투갈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도.




이틀 전 얼떨결에 들어간 숙소, 

사흘째에는 그나마 방을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으나

오히려 바꾼 방이 보다 아늑해서 좋았다.



오후에 방을 바꿔 짐을 대충 정리한 뒤,

다시 역사지구로 발길을 돌린다.





사실 아무리 내가 ‘관광’보다 ‘여행’을 지향한다지만,

대개 첫 이틀은 정신없이 관광지들을 돌아다니게 된다. 

대충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고 난 후 여유로움이

오늘 올리는 사진들에는 짙게 배어있다.





그 전날 주교좌성당(Sé) 내부는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Sé를 다시 가보기로 결정.






늦은 오후의 낮은 햇빛이 성당에 스며든다. 



그리고 원형 창을 통해 빚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





로마네스크 양식의, 

11세기부터 13세기 걸쳐 지어진 이 성당의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는 바로 이, 
두개의 탑이다. 





그리고 성당 내부의 전시물들도 볼 만 했고.




Sé에서 도우루 강으로 내려가는 길고 긴 계단에서, 

이국의 눈빛을 가진 갈매기들을 만난다.







마치 오래된 추억처럼 

포르투는 지금도 그렇게,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아래의 Hot Five는

Sé 근처에 있는 나름 유명한 재즈 클럽이지만, 

하필이면 내가 간 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시내 중심가로.


내가 머무른 호텔 근처에는 

주말이면 이렇게 젊은 연주자들이 나와 공연을 펼쳤다.



선뜻 들어가보지 못한

대형 극장도 지금은 아쉬움으로 남고.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사실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제 이튿날이면 리스본으로 향해야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야하는,

정말 돌아오기 싫었던 포르투의 마지막 밤.


2009. 9. 18. Fri.


포르투는 여러 모로, 

포르투갈의 문화 수도이다. 

특히 이 건물, 

까사 다 무지카(Casa da Musica)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뭔가 다각면체이지만 반듯한 것이 아니라

리듬감 있게 불균형한 덩어리,

마치 현대음악에서의 ‘클러스터’와도 같은 이 건물은,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작품이다. 




혹자는 이 건물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비교하기도 할만큼, 

건축계에서는 나름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건물의 모양새가 달라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수용자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보아도 될까.


이 음악홀이 단지 
고답적인 음악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할 때만 비로소 
그 모양이 완성된다는 의미일는지도 모르겠다.




포르투의 역사지구로부터 북서쪽, 

보아 비스타(Boa Vista) 대로의 시작점에 위치한 이곳은

3개의 오케스트라 – 또는 앙상블 — 를 갖고 있다. 

포르투 국립 오케스트라(Orquestra Nacional do Porto),

고음악 전문인 Orquestra Barroca, 
현대음악 앙상블인 Remix Ensemble이 그것.





아래 보이는 바닥에 깔린 타일은, 

약간 폭신한 소재로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마치 포르투의 특산물인 코르크를 상기시키는 듯.



출입구 역시 독특해서, 

아래 합성수지 소재의 커튼이 

자동문 처럼 열리고 닫히는 구조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건물의 다각형 실루엣이 건축물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건축물 자체에 대한 가이드 투어가 있을 정도.

홀의 음향도 궁금했으나, 

애석하게도 내가 포르투에 있는 동안에는

공연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에서 이뤄지는 공연이

단지 클래식 음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재즈와 팝, 심지어 클러빙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




다양한 기념품들.
바라보고 있으면... 사게 된다.
기념품들도 상당히 예뻐서 구매욕을 자극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까사 다 무지카 측이 자체제작한 CD들일 것이다.
이곳 이외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또는 포르투갈 내에서도 이곳 아닌 어느 도시에서도
구할 수 없는 CD들이기 때문이다.





까사 다 무지카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뻗어있는 대로가 바로 
보아 비스타 대로(Avenida da Boa Vista).
사실 까사 다 무지카가 위치한 곳이
보아 비스타 로터리다.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선 신시가지.



신시가지, 라고는 하지만
이런 장면들도 눈에 띄고.






관광지로서의 포르투갈이라기보다는
포르투갈인들의 거주지로서의 포르투갈의 모습이랄까.



그리고 돌고돌아,
내 발길은 포르투의 가장 큰 전통시장인
발랴웅 시장(Mercado do Balhão)으로 향한다.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재래시장을 들러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꾸며진 모습이라기 보다
현지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운이 좋다면 마음에 드는 사진들도 
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아쉽게도,
다음 포스트는 포르투의 마지막 밤이다.
9월 20일 아침 비행기이므로,
이튿날인 19일에는 다시 리스본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


2009. 9. 18. Fri.


리스본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나가려면 

거진 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이를테면 서울에서 서해안으로 나가는 느낌과 비슷. 

하지만 포르투는 도우루 강을 따라

시가전차를 타고 20분쯤 이동하면

드넓은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생각보다 바다가 멀지 않다. 


그래서 포르투 3일째 아침, 

대서양을 향해 길을 떠난다. 

(사실 ‘대서양’이라기보다는 ‘대서양이 보이는 바닷가’가 
더 적합한 표현이겠지만.)


호텔을 나서 전차 정류장으로 가는 길, 포르투의 아침 표정.







전날 보았던 엔리케 해양왕자의 동상, 

그 머리 위에는 갈매기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동화 “행복한 왕자”가 생각나는 풍경.




전차 안 풍경은 리스본의 그것과 별 다를 것 없었으나, 

꽤 오래된 듯 실내조명이 매우 고풍스러웠다. 





전차를 타고 가며, 

도우루 강변의 삶을 엿보다. 






포르투갈의 작별 인사는 아데우시(Adeus).

이 말을 풀어보자면 일종의 전치사인 a와,

신을 의미하는 deus가 합쳐진 말이다. 

(스페인 인사말 adios와 기원이 같다.)


굳이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신과 함께하시길’ 정도가 되겠다. 

그런 본 뜻보다는 그저 ‘안녕히’ 정도의 인사말로 정착했지만.


아무튼 
누군가는 배를 저어 떠나고, 

누군가는 또 그를 위해 기도를 해줄 것이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며, 
먼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길 떠나는 자여, 
신이 당신과 함께 하시길. 



유럽의 소형차 사랑은 어디나 비슷하다. 

자동차를 위한 길이 좁고 
(반대로 사람을 위한 길은 넓다)
주차공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람들이 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





푸른 바다와 쪽빛 하늘이 점점 가까와지니, 

마음은 날아갈 듯 부풀어오른다. 







도우루 강 하구.

물막이 둑이 긴 호(弧)를 그리며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등대. 

길 떠나는 자에게 기도가 하나의 위안이 되듯, 

집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등대가 

커다란 위안이 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은 

대체로 영양분이 풍부하다던가. 

고기잡이, 라기보다는 낚시를 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바다는 이들에게 숙명이요, 도전이자, 
삶 그 자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고,

바다에 익숙한 이들은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포르투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 

헬리콥터 투어를 제공하는 회사가 눈에 띈다. 

가족과 함께 간 것이라면 한번쯤 이용할 만 하겠다. 

혼자 가기에는 좀 민망하기도 하고, 
부담도 되지만.



이번 포스트는 이렇게, 

날로 먹으면서 끝.

다음은 포르투의 명물 중 하나인

음악의 전당(Casa da Musica)로 이동한다.


2009. 9. 17. Thu.


리스본에 테주 강이 있고 파리에 센 강이 있다면

포르투에는 도우루(Douro) 강이 있다. 

오래된 도시는 늘 강을 끼고 있는 법이다. 

한강에 비하자면 그리 넓지 않은 강이지만, 

사실 도시와 유기적으로 어울리기에는

한강이 비정상적으로 큰 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서울의 ‘배산임수’는 인왕산과 청계천이었다.)


어쨌든 이 강은 포르투라는 도시가 

이 나라의 다른 지역과,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교역할 수 있는 교역로이자 
문화를 주고받는 소통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 도우루(사실 포르투갈 발음은 도-루에 가깝다고 한다) 강 위에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이 바로 이 다리,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íz I)이다.


리스본의 유명한 “산타 주스타의 엘리베이터”와 마찬가지로, 

이 다리 역시 에펠의 또다른 제자인 테오필 세리크가 디자인했다. 

포르투와 남쪽의 빌라 노바 데 가이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당시 신소재로 각광받던 
철골의 단순명료한 모더니즘을 이용해

복층 구조로 설계됐다. 
하부의 데크는 자동차가, 

상부의 데크는 전철이 다니게끔 돼 있는데,

특히 사람들이 건너 다닐 수 있도록 
상부의 데크는 늘 개방돼 있다. 

높이가 44미터이니,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건널 때 조금(과연?) 다리가 떨릴 수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언덕 위 건물이

모로의 정원(Jardim do Morro). 



다리 위에서 바라본 포르투의 풍경. 




흑백으로 변환하면 더 멋질까 하여 후보정한 결과물은 아래에. 




다리를 건너다보면 옆으로 전철이 지나다니는데, 

워낙 천천히 달리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전철이 다니지 않는 동안에는 다리 전체가 보행자 차지. 

그러니까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전철의 레일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얘기인데, 
덕분에 다리 왼쪽과 오른쪽 전경을 왔다갔다 하며 즐길 수 있다. 



포르투의 남쪽인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는
그 유명한 포트 와인의 저장창고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개는 주교좌성당 Sé 앞에서 
포트 와인 관광 기차(모양의 버스)가 출발한다. 
나는 비록 포트 와인 관광은 하지 않았지만, 
와인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모로의 정원(Jardin do Morro)은 추측컨대 
무어인의 정원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모로의 정원은 포르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포르투의 풍경을 즐기려면, 한번쯤 가봐야 할 곳.



이쯤 되면 당연히, 
아, 이곳에서 야경을 보면 정말 멋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 
그래서 저녁때 다시 찾기로 결정하고 
일단 포르투갈 사진센터(Centro Português de Fotografia)로 이동한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내부의 구조물들을 최소한으로 개축해, 
미술관 같지 않은 독특한 내부구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대충 의역하자면)
“프랑스 사진가들의 눈으로 본 포르투갈”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어느 사진가는 
포르투갈의 도시에 빛나고 있던 “TEXAS”라는 간판을 찍었고, 
멀리 동아시아의 이방에서 온 나는 
그 사진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 
이 아이러니함!


국립 사진 센터 맞은 편으로는 
코르도아리아 광장(Plaça da Cordoaria)이 위치해 있고, 
때마침 주민들이 모여 작은 벼룩시장을 열고 
자신들만의 ‘콘서트(?)’를 하고 있는 모습, 
이런 모습이 유럽의 도시를 정겹게 만든다. 


중세의 삶과 현대의 삶이 같이 녹아들고 있는 도시, 
포르투.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 길을 잃고 만난 풍경들. 


약간 술기운이 오른
두 남자가 나를 향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흔쾌히 찍어줬다기보다는 약간 겁을 먹고 셔터를 눌러서
사진은 이 모양 이 따위이지만, 
나름 소중한 포르투갈에서의 추억 가운데 하나다.


해는 지고, 나는 다시 루이스 1세 다리로 향한다. 
포르투의 야경을 상상하며.


유럽의 대중교통이 자율적이라는 점은
파리에서도, 두브로브니크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포르투의 시스템은 정말 심할 정도다. 
달랑 리더기 2개.
표를 리딩하지 않는다고 해서 벨이 울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리딩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드물다. 
부럽다.





시 모로의 정원(Jardim do Morro).



포르투의 밤은 역시 예상대로
가슴을 떨리게 하고.




밤에 건너는 다리는 또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포르투의 성곽과 모노레일(funicular)의 고즈넉한 밤풍경.



늘 전철과 보행자가 다니는 다리다보니
안전점검과 보수는 주로 밤에 이뤄지는 모양.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시간을 여행자는 아쉬워하고. 




밤에 찾은 성 벤투(São Bento) 역.



당신이 만약 포르투갈에 간다면, 
리스본을 가지 않더라도 포르투는 반드시 가야만 한다. 
도시의 모든 것이 당신에게 말을 거는 곳,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눈이 부신 도시,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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