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3. Sun.


아줄레주(Azulejo). 

얼핏 생각하면 푸른색을 뜻하는 
Azul과 관련이 있을 것 같고 

또 타일 중에 대다수가 
푸른색 단색으로 이뤄져있어 혼동이 있을 수 있지만,

(더군다나 포스트 제목을 선정적으로 뽑기 위해 
나조차도 ‘푸른 바다’ 어쩌고 했지만) 

엄연히 이 단어는 Azul과는 관계가 없는,

아랍으로부터 유래한 단어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무어인 점령시대 이후 

아랍의 문화는 이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 단어의 유사성으로 인해, 

단어가 수입된 이후 작품 제작에는 
푸른색이 많이 반영됐을 수도 있겠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포르투갈 현지의 설명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포르투갈의 어디서나 
이 타일 조각들을 마주치게 된다. 

건물의 내부장식은 물론이고 외장재로도 사용되며,

옛 건축물 뿐만 아니라 
요즘의 건물에서도 응용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타일 천국’이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시대의 아줄레주를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Muceu Nacional do Azulejo)이다.
‘마드레 데 데우시’ 성당을 개축한 건물이라고.


이렇게 캔버스처럼 장방형으로 제작된 것도 있지만, 
아래 장식물처럼 복도에 노출된 것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근거리에서 보면 조잡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타일들이 모여
하나의 대형 시각 작품이 되는 걸 본다면,
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전통예술로 
아줄레주를 꼽는 지 얼핏 이해도 된다.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성당이었기 때문에, 
이런 공간의 묘미도 만끽할 수 있다.



아줄레주에 그려진 작품들은 
그 시대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에 
성화(聖畵)부터 자연주의 화풍의 전원풍경, 
궁정의 풍경을 비롯해 
일상적인 삶의 모습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대의 예술가들이 재해석해낸 아줄레주.


특히 아래 작품은 
색채의 단순하지만 미묘한 변화와
형태의 단순함을 통한 
타일의 물성에 대한 강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리스본 시가를 지도 형태로 구현한 작품.


아줄레주는 이것으로 마무리하지만, 
앞으로 리스본 시내나 특히 포르투(Porto)의 사진에서
줄곧 나올 예정이다. 
그만큼 흔하고 대표적인 예술이기에.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첫날 벨렝지구와 아줄레주 박물관을 
함께 둘러본 건 나의 실수다.
여행의 동선 치고는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었다.
(시내 중심가를 기준으로 서로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다.)

이로서 대충 얼떨떨한 상태에서의 리스본 첫날은 
어느새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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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3. Sun.


벨렝(Belém).

리스본 중심가로부터 서쪽에 위치한다. 

테주(Tejo)강으로 따지자면 하류쪽, 

그러니까 바다에 더 가까운 지역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인 

벨렝탑(Torre de Belém)과 발견기념탑은 

테주강의 하류로부터 시작한 포르투갈의 전성기,

대항해시대와 해양제국의 흔적이다. 


그래서일까, 
벨렝 옆에 위치한 지난 포스트
제로니모 수도원 같은 경우도
바스코 다 가마나 ‘엔리케 해양왕자’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도 하다. 

발견기념탑은 포르투갈어로 Padrão dos Descombrimentos.

1960년 엔리케 해양왕자의 500주기를 기념해 건립됐다.

높이는 52미터에, 
포르투갈 고유의 뛰어난 범선이었던

캐러벨 선을 모티브로 했다(고 가이드 북에 나와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독재국가가 그렇듯
옛날의 영화를 현재의 권력의 기반으로 
활용하려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유신시절과 신군부 시절의 건축물과 같이
웅장하고 영웅적인 무언가를 전해주려는 의도.
그렇게 함으로써 어떻게든
부정한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
그리고는 4년 뒤 
살라자르 독재체제는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한다. 
어떤 어둠도 
빛을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뒤로 감춘 채, 
이제는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 
어쨌든 살라자르는 살라자르고, 
엔리케는 엔리케니까.



흥미로운 것은 유적을 설명하는 표지판이다. 

2004년 파리에 갔을 때 
아래와 같은 형태의 표지판을 처음 보았다. 

일종의 CI 작업이랄까, 

통일된 형태의 세련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는데, 

포르투갈도 동일한 형태의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을 더 가 봐야겠지만, 

혹시 EU 차원에서 통일된 
디자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그리고 더 하류로 내려가면, 
그 유명하다는 벨렝 탑(Torre de Belém)이 나온다. 
16세기초 마누엘 1세 시절 
배의 출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이 우아한 탑은 기단 부분이 치맛자락 같다고 해서

‘테주강의 귀부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사실은

가이드 북이라면 어디나 나와있고, 

인터넷에서 ‘벨렝탑’을 검색하면 
대부분의 씌어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으면, 

딱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님’스러운 사진이 된다. 



탑은 일종의 감시 초소 개념인지라

오르고 내리는 계단이 널찍하지 않다. 

불필요한 사람들이 
오르내릴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출입을 통제해야 했으므로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1명이면 꽉 찰 계단에 
올라가는 이와 내려오는 이가 뒤엉켜

꼭대기에 오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4월 25일 다리’로, 

살라자르 시대에는 정권홍보 차원에서 
‘살라자르 다리’로 칭했으나

1964년 민주화 이후 민주화 기념일인 
4월 25일을 따 개명했다.



이런 유적지에 빠질 수 없는 요소.

특히 아래 총 들고 있는 사람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겠다고 하면 

관광객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포즈를 취해준다. 

이런 것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그리고 벨렝 지구 공터에서 만난 축구하는 사람들. 

잊기 전에 하는 말인데 

당연히 포르투갈은 ‘축구의 나라’다,

어디나 기념품 가게에 등번호 9번의 
호나우두 티셔츠가 걸려있을 정도로.

그런데 오른쪽의 뒤엉킨 사람들을 보면, 

뭐 동네축구가 다 그렇듯 
그다지 ‘신사적인’ 게임은 아니었던 듯 싶다. 



사실 음식물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탓에 

포르투갈의 다양한 맛있는 먹을 거리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론리 플래닛에서 추천한, 

벨렝 지구의 제과점에서 먹은 Pasteis de nata의 포장재.

쉽게 말하자면
커스터드 크림이 얹혀진 타르트다.



이 포장재에는 6개가 들어있다. 
사실 포르투갈의 첫날이고 해서
워낙 정신없던 터라
긴 줄에 떠밀려 서두르는 바람에 6개짜리를 샀으나...
2개면 충분하다. 
(달아서 더 못 먹는다.)
그리고 아래는 벨렝 문화 센터에서 본, 
재미있는 화장실 표지.
이런 세부적인 디자인을 보면 
역시 문화적인 전통이 상당한 나라라는 생각.


불행히도 센터의 전경이나, 
센터 내부 전시물은 찍을 생각을 못 했다. 
조금 허기졌고, 
조금 지쳐있었고, 
(위의 타르트를 먹기 전이다)
다음 포스트들에서 말하겠지만
사실 리스본의 첫 인상은, 
좀 ‘엉성한’ 나라라는 생각에 심드렁해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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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3. Sun.


일요일은 대부분의 유적지와 박물관이 오후 2시까지 무료다. 

일단 시내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성 제로니모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과 

벨렝 지구를 방문하기로 한다. 

사실 시내는 바이사(Baixa)와 
바이루 알투(Bairro Alto), 알파마(Alfama) 등 
일곱개의 언덕 중심으로 나뉘어진 지역별 명칭도 
아직 눈에 잘 안 들어오는 터라, 

어디부터 찾아가봐야 할 지 몰랐던 탓도 있다. 


가장 멀리 있지만 
그래서 뚝 떨어져 가장 눈에 띄는 두 곳이 
첫 방문지. 

성 제로니모 수도원은 
시가전차 15번을 타고 가면 나온다. 



사실 첫인상은 별 것 없었다. 

건축양식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내게

이런 류의 성당이나 수도원이야 
유럽에 흔하디 흔하다는 느낌.

그저 포르투갈 특유의 후기 고딕 양식인 
마누엘린 스타일의 건물이라는 게, 

내가 이 수도원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이 수도원은 회랑과 성당 내부가 별개의 입구로 되어 있는데

(사실 성당은 산타 마리아 성당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회랑은 언제든 관람이 가능하지만, 

성당 내부는 미사와 미사 사이의
여유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 적어도 내가 찾은 일요일은 그랬다.

하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시도때도 없이 미사를 드리는, 

종교적인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평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먼저 ‘구경’한 곳은 회랑. 






사실 크게 보자면 잘 구별이 안 되는 건물일지라도, 

세부의 장식을 보면 흥미로운 특징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성 제로니모 수도원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회랑의 기둥들이 이뤄내는,
 아래 이어지는 사진들과 같은 기하학적 패턴이었다. 








관광객들이 참 많았으나 

그다지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다들 여유로운 표정, 

성당이라 더 그랬겠지만,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사람을 그리 만드는 지도 모른다.




포르투갈 근현대 문학의 거목이라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유해도 이 수도원에 안장돼 있다. 

원래 다른 곳에 묻혔으나, 
우리 말로 하자면 ‘이장(移葬)’해 온 것.



아울러 ‘제로니모’가 누굴까 했더니만, 

서양미술사 책을 몇 번 들여다본 이라면 익숙할

‘성 제롬’이 바로 그였다. 

아래 그림에서도 보이듯, 

사자가 늘 그의 책상에 붙어 있어 
유난히 기억하기 쉬웠던 성인.

그러나 크리스트 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막상 성 제롬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내 한계.



회랑을 장식하고 있는 

포르투갈 전통의 아줄레주(Azulejo) 장식. 

원래는 푸른색 단색이 유명한 타일 장식이지만, 

이 아줄레주는 다채색으로 채색돼 있었다. 



마침내 성당 앞에 섰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관람 시간이 

미사와 미사 사이의 여유시간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 



그리고 성당 내부.



이 까마득한 높이에서, 

마누엘 양식이 고딕 양식의 변형임을 알 수 있다. 

궁륭의 뼈대들이 수놓은 기하학적 아름다움.



성당에 빠질 수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

생각해보면 스테인드 글라스란, 

물리적 깊이는 결여됐으나 
영적 깊이로 인해 신비로워 보이는, 

그리고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검은색의 무(無)로 보이나

성당 내부로 들어와야 
비로소 형상을 얻게되는 예술이 아닌가.

성당 밖에서 당신은 어떤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지만

(다시 말해 신의 밖에서 당신은 어떤 경이로움도 알 수 없지만),

성당 안에서야 비로소 
당신은 美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된다.  



고딕 양식은 어쩌면 
신플라톤주의적인 빛에 대한 오마주 아니었을까.

이처럼 빛을 신비롭게 받아들이는 건축물은, 

그 전에도 후에도 흔치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헤매다보면, 

어느새 출구에 이른다. 

아마도 기도를 끝낸 사람들에게는, 

이제 저 밖의 환한 빛도 신의 자취로 느껴질 것이다.



이제 발견기념탑과 벨렝탑으로 이동.


2009. 9. 12. Sat.

아침 10시 20분 인천발. 

헬싱키 경유, 리스본 행.


핀에어는 처음 타본다. 

느닷없이 음악을 듣다가 떠나고 싶어진 포르투갈인지라 

미리 항공권을 예매할 시간이 별로 없었고, 

기껏 2~3주 남겨놓은 터라 
다른 항공편을 선택할 수도 없었던 것.

그러나 가장 항로가 짧은 덕에 비행시간 역시 짧았고,

그 때문인지 요금도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라 
핀에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단, 마일리지가 쌓이지 않는 것이 단점이지만.

 


핀에어의 차분한 톤의, 깔끔한 좌석. 
이처럼 옷걸이가 있던 좌석이 
다른 항공기에도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경유지인 헬싱키 공항에서. 
공항 저편으로 넓게 펼쳐진 숲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푸르던 하늘에, 
금세 바람이 비를 몰고 온다.


사실 이제는 창가쪽 자리보다 
복도쪽 자리가 더 좋지만, 
그래도 떠나는 길에는 
여전히 창가쪽 자리가 설렌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풍경은, 
그것이 비록 구름 뿐인 풍경일지라도 설레기 때문. 


(경유지에서 대기시간을 빼고서도)
자그만치 15시간 가까이의 비행 끝에 도착한 
리스본의 밤. 
숙소인 Hotel Nacional이 위치한 
‘마르케스 드 폼발(Marquês de Pombal) 광장’과 
‘호시우(Rossio) 광장’을 잇는 
Av. da Liberdade 거리의 해진뒤 풍경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도입한 곳이 몇 군데 있더라만, 
포르투갈 시내버스는 이렇게 
노선의 대기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 시스템이 각 정류장마다 설치돼 있다. 


다시 리베르다지 거리.
잠깐의 저녁 산책 뒤 여장을 풀고, 
이튿날을 준비한다. 


알고보니 포르투갈은 파두의 나라가 아니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파두를 듣지 않는다. 

파두 클럽에는 노신사와 숙녀, 

그리고 역시나 나이 지긋한 여행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파두의 나라였기 때문에, 

그 사우다지(saudade)를 느껴보고 싶어 
떠났던 여행이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의 젊은이들은 
훨씬 더 다양한 전통들을 흡수해

새로운 음악들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일렉트로니카와 아프리카 뮤직, 

그리고 파두의 전통과 집시 음악, 

이웃 나라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영미권의 팝음악까지 흡수하면서 

훨씬 더 생기있는 음악을 거리 곳곳에서, 

그리고 그들만의 클럽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나 
크리스티나 브랑쿠보다

마드레데우쉬와 둘세 폰테쉬가 
아마 포르투갈 음악의 현재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파두와 사우다지는 
이제 더이상 삶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

그저 포르투갈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상상하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실제적인 힘을 갖는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포르투갈 사람들의 내면에 흐르는 정서, 

이른바 ‘대항해 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된 먼 곳으로의 동경과

이제는 옛 영화가 되어버린 그 시대에 대한 

쓸쓸하지만 도도한 향수가 어우러진, 

도시의 건물과 그 옆을 흐르는 강물, 

바람과 바다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그들만의 향기라고나 할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추측도 가능할테다. 

이제는 전설이 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그들이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섞여 있다. 

살라자르의 장기독재 정권이 파두를 후원하면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일종의 '문화대사' 역할을 했던 것. 

어쩌면 파두를 떠올릴 때 
그런 씻고 싶은 과거사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제 파두는 흘러간 옛노래, 

우리로 말하자면 ‘가요무대’에 나올 법한 

유성기 시대의 트로트라고나 해야 할까, 

생생한 현재를 보여주는 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리스본에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에

그렇게 바래져가는 무엇과도 같다. 


그렇기에 파두는 어쩌면 그 자체로 
‘사우다지’의 대상이 되는 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이제 다시 손을 댄다면 
한 줌 가루로 바스라질 듯한 음악. 

‘사우다지’를 노래했으나 
이제는 그 자신마저도 

추억과 향수의 제단에 바쳐져야 하는, 

그런 음악. 



사실 요즘은 일종의 무기력증에 빠져버려서, 
올해 휴가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 지 종잡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경제난에 비어가는 주머니에,
신종플루까지 창궐하는 2009년에 말이다.

그렇지만 어느날인가,
일종의 ‘사고’라고나 할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음반을 다시 꺼내 듣다가, 
문득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파두(Fado)의 나라, 
이미 해양제국이라는, 잃어버린 그 옛날의 영화를 
지금의 삶에서 반추하는 나라, 
그래서 장소만이 아닌 시간과 역사에 대한 향수, 
이른바 사우다지(Saudade)를 모두의 어깨에 
짊어지고 사는 나라. 



떠오르자 마자 산 것은 바로 론리 플래닛. 
포르투갈에 대해 제대로 된 여행 안내서가
국내에는 흔치 않다. 
이미 지나간 에디션을 번역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같이 묶어놓은 론리 플래닛 한글판과
랜덤하우스에서 마찬가지로 두 나라를 묶어놓은 책 한권 정도인 듯.

그리고 론리 플래닛과 더불어 산 것은
‘큐리어스’ 시리즈 포르투갈 판. 
해당 국가에 사는 외국인들이 저술한 이 시리즈는, 
깊이 읽을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 나라의 대강을 파악하는 데는 
딱 그 가격만큼 도움을 준다. 
사실 기껏해야 7박 9일 일정의 여행에 
그 이상의 정보란 좀 사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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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마리자(Mariza), 마드레데우쉬(Madredeus), 
크리스티나 브랑쿠(Christina Branco)와 
둘세 폰테쉬(Dulce Pontes)의 음반을 찾아 
아이팟에 옮겨 놓는다. 

한가지 더, 
과연 포르투갈에도 클래식 음악가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만한 작곡가는 그다지...
나름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봉텡푸(Joao Domingos Bomtempo)의 Te Deum이나, 
딱 모차르트 음악의 판박이인
Joao de Sousa Carvalho의 음악을 찾아본다. 

생각보다 많은 클래식 음반이 녹음되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구할 수 있는 음반은 과히 많지 않을 듯. 
몇 명 이름을 거론해보자면, 
앞서 말한 봉텡푸와 카르발류, 
그리고 Joly Braga Santos, Luis de Freitas Braco 등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포르투갈을 떠올린 것 치고는
준비를 참으로 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의 여행이 막무가내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났던 데 비하면 말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회사 동기가 소개해준 책인데, 
내 요즘의 내면의 풍경과 닮아있는 이야기다.
어째 제목이 낯익다 했더니, 
황인숙 시인의 얼마전 시집 제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꺼내 몇 편 읽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하나.

어쨌든 출발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온다. 
설렘과 모종의 두려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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