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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3. Sun.


일요일은 대부분의 유적지와 박물관이 오후 2시까지 무료다. 

일단 시내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성 제로니모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과 

벨렝 지구를 방문하기로 한다. 

사실 시내는 바이사(Baixa)와 
바이루 알투(Bairro Alto), 알파마(Alfama) 등 
일곱개의 언덕 중심으로 나뉘어진 지역별 명칭도 
아직 눈에 잘 안 들어오는 터라, 

어디부터 찾아가봐야 할 지 몰랐던 탓도 있다. 


가장 멀리 있지만 
그래서 뚝 떨어져 가장 눈에 띄는 두 곳이 
첫 방문지. 

성 제로니모 수도원은 
시가전차 15번을 타고 가면 나온다. 



사실 첫인상은 별 것 없었다. 

건축양식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내게

이런 류의 성당이나 수도원이야 
유럽에 흔하디 흔하다는 느낌.

그저 포르투갈 특유의 후기 고딕 양식인 
마누엘린 스타일의 건물이라는 게, 

내가 이 수도원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이 수도원은 회랑과 성당 내부가 별개의 입구로 되어 있는데

(사실 성당은 산타 마리아 성당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회랑은 언제든 관람이 가능하지만, 

성당 내부는 미사와 미사 사이의
여유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 적어도 내가 찾은 일요일은 그랬다.

하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시도때도 없이 미사를 드리는, 

종교적인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평일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먼저 ‘구경’한 곳은 회랑. 






사실 크게 보자면 잘 구별이 안 되는 건물일지라도, 

세부의 장식을 보면 흥미로운 특징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성 제로니모 수도원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회랑의 기둥들이 이뤄내는,
 아래 이어지는 사진들과 같은 기하학적 패턴이었다. 








관광객들이 참 많았으나 

그다지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다들 여유로운 표정, 

성당이라 더 그랬겠지만,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사람을 그리 만드는 지도 모른다.




포르투갈 근현대 문학의 거목이라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유해도 이 수도원에 안장돼 있다. 

원래 다른 곳에 묻혔으나, 
우리 말로 하자면 ‘이장(移葬)’해 온 것.



아울러 ‘제로니모’가 누굴까 했더니만, 

서양미술사 책을 몇 번 들여다본 이라면 익숙할

‘성 제롬’이 바로 그였다. 

아래 그림에서도 보이듯, 

사자가 늘 그의 책상에 붙어 있어 
유난히 기억하기 쉬웠던 성인.

그러나 크리스트 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막상 성 제롬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내 한계.



회랑을 장식하고 있는 

포르투갈 전통의 아줄레주(Azulejo) 장식. 

원래는 푸른색 단색이 유명한 타일 장식이지만, 

이 아줄레주는 다채색으로 채색돼 있었다. 



마침내 성당 앞에 섰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관람 시간이 

미사와 미사 사이의 여유시간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 



그리고 성당 내부.



이 까마득한 높이에서, 

마누엘 양식이 고딕 양식의 변형임을 알 수 있다. 

궁륭의 뼈대들이 수놓은 기하학적 아름다움.



성당에 빠질 수 없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

생각해보면 스테인드 글라스란, 

물리적 깊이는 결여됐으나 
영적 깊이로 인해 신비로워 보이는, 

그리고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검은색의 무(無)로 보이나

성당 내부로 들어와야 
비로소 형상을 얻게되는 예술이 아닌가.

성당 밖에서 당신은 어떤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지만

(다시 말해 신의 밖에서 당신은 어떤 경이로움도 알 수 없지만),

성당 안에서야 비로소 
당신은 美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된다.  



고딕 양식은 어쩌면 
신플라톤주의적인 빛에 대한 오마주 아니었을까.

이처럼 빛을 신비롭게 받아들이는 건축물은, 

그 전에도 후에도 흔치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헤매다보면, 

어느새 출구에 이른다. 

아마도 기도를 끝낸 사람들에게는, 

이제 저 밖의 환한 빛도 신의 자취로 느껴질 것이다.



이제 발견기념탑과 벨렝탑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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