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5. Tue. 


신트라 궁에서 무어인의 성을 올라가는 건

사실은 바보 짓이다,

나는 잘 몰라서 그렇게 했지만.


신트라를 편하게 구경하려면 

페나 궁 - 무어인의 성 - 신트라 궁의 순서로 
돌아보는 게 낫다. 

왜냐하면, 위의 순서가 높이의 순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래에서 올라가느니 
위에서 내려오는 게 편한 법이다. 


더군다나 내 경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무어인의 성 정문(?)이 아니라

뒷길인 산길(산타 마리아의 길)을 통해 가는 바람에

왼쪽 무릎의 관절염이 도질 뻔 했다. 


하지만 여행은 모름지기 길을 잃는 것, 

길을 잃어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여행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길을 잃을 때에야 비로소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되기 마련.



글쎄, 약수터라고 해야할까?

이렇게 물을 받고 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아

셔터를 누른다, 소심하게.

이방인의 눈이 신경 쓰이는 건 저들도 마찬가지.

서로 힐끔힐끔거리는 모습이 아마 
제3자가 보기에는 좀 웃겼을 터.


그리고 이 약수터를 끼고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아래와 같은, 
산타 마리아 산책로의 입구가 나온다. 

아치 모양의 입구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일종의 회전문이 나오는데, 

이 회전문의 기원이 언제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산책로(라기보다는 산길)에는 

우리나라의 산길에 각종 산악회에서 길을 표시해놓는

리본이 나뭇가지마다 달려있듯이, 

길을 안내하는 독특한 표기법이 눈에 띈다.

아래와 같이 “=” 표시이면 이 길이 맞다는 것이고,

x자로 표기되어 있으면 길이 아니라는 표시.

그리고 아랫쪽의 빨간 줄이 "┌" 모양이면 왼쪽, 

"┐" 모양이면 오른쪽 길이라는 표시. 

단순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한 번 잃은 나는... 
할 말 없음이다.)



그리고 이 길을 오르다 보면 

아래와 같은 장면, 

즉 유적 발굴 및 복원 작업을 하는 장면들을 마주치게 된다. 

역사가 오랜 만큼 

여전히 무어인의 성은 탐구의 대상인 것.



아무튼 한참 산길을 올라 
드디어 무어인의 성(Castelo dos Mouros)에 도달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성은 

포르투갈을 점령한 무어인들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지금의 성은 19세기에 리노베이션을 거친 것이라고.

이를테면 크리스트교 세계와 아랍 세계의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걸작이라고나 할까.





이 성이 독특한 것은 

큰 바위들을 제거하고 터를 닦아 세운 것이 아니라

그대로 놔둔 채 
지형지물을 성의 일부분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놀라운 것은 

이 성을 쌓은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이 성을 공격해 빼앗은 사람들도 참 대단하다는 것. 

그만큼 만만치 않은 높이에

만만치 않은 경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탑에서 탑으로 걸어가면서 

그 경치에 황홀해 진다. 

아울러 탑마다 제각각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데, 

각각의 깃발은 과거 포르투갈의 왕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아래의 깃발은

‘신트라’를 아라비아 글자로 표기한 것. 

이 성의 기원을 확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아르누보의 장식처럼 

이국적으로 생긴 이 나무 역시 

남쪽 어딘가에서 건너왔을 법하다. 



그리고 멀리, 
페나 궁전의 실루엣이 보인다. 

(광각렌즈로 찍어서 더 멀리 느껴지는 탓도 있지만.)




여행 일정이 번거롭다고 빼놓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

무어인의 성을 뒤로 하고

이제 동화속 공주가 사는 곳과도 같은

페나 궁으로 이동한다.

마지막으로 성곽의 사진 두 컷 추가.





2009. 9. 15. Tue.


리스본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는 곳, 

신트라.


무어인의 시대부터 시작해 포르투갈의 수복 뒤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별장들로 이용되기도 했고,

고딕과 무어인들의 양식, 중국과 인도의 장식들이 뒤섞여

독특한 이국적 풍경을 낳는 곳이 바로 
신트라다.


그리고 신트라 궁과 페나 궁을 방문하면서 비로소,

내가 리스본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다.

혼성모방과 키치.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리스본에서 신트라로 가려면 

대개 호씨우(Rossio) 역을 이용한다. 

10분 정도 간격으로 출발하는데 대략 50분 가량 걸린다. 

아래는 신트라 기차역.



신트라 기차역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버스 정류장과 안내소가 보인다. 

안내소에서 충분히 설명을 듣고나면 

신트라의 관광지 순환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그게 여러모로 보아 합리적이기 때문인데 

신트라역-신트라궁-무어인의 성-페나궁-
신트라궁-신트라역, 이 순서로 운행한다.)


이 곳에서 (나중에 이야기할) 
호까 곶(Cabo da Roca)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기도 하는데,

순환버스로 한 정거장을 이동하면 나오는 신트라 궁에서도

신트라-호까 곶 순환버스가 출발하니 
선택하기 나름이겠다. 

(대개 신트라 관광 안내소에서 출발해서, 
돌아올 때는 신트라 역으로 돌아오는 게 낫다.)


그래서 어쨌든 도착한 신트라 궁. 

웬만한 블로그나 카페 등에 너무 잘 알려진 

오른쪽의 원뿔형 굴뚝은 

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감동의 크기가 다르기 마련이다. 

(이 역시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입장료는 리스본 카드가 있으면 할인/무료다. 

심지어 앞에서 본 리스본-신트라 간 기차도 

리스본 카드가 있으면 프리 패스고, 

신트라 순환 버스와 호까곶 순환 버스 역시 무료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 자체로도 독특한 양식들이

한 곳에 뒤섞이다보니 

외벽도 그렇고 내장도 그렇고

뭔가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건축 스타일이다. 






아래에 보이는 타일 역시 일종의 아줄레주.



모름지기 건축이란 

인공 조명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를 본다면

빛의 미학이 아닌가 싶다. 




빛과 색채의 드러남,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교차.



아래에 보이는 것이 유명한 ‘백조의 방’ 천장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뭔가 좀 어설프다. 

리스본이라는 도시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감각.



백조의 방(Sala dos cisnes) 이외에도 
까치의 방(Sala dos Pegas)이나

아랍의 방(Sala dos Árabes) 등 여러개의 방이 있었으나, 

일일히 소개하기는 좀 번거로우니 사진 몇 장만 더 올린다.





그리고 굴뚝. 

사실 루브르가 모나리자의 공간이라면

신트라 궁은 저 굴뚝의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굴뚝의 내부를 보기 위한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다시 밖에서 본 굴뚝.


그리고 멀리, 

무어인의 성이 보인다. 



산기슭에는 다른 궁궐같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다시 신트라 궁 안으로 눈을 돌리면, 





나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보니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다. 

그리고 이런 과장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호감이 갈 만한 건축물이다. 



멀리서도 역시 인상적인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있는 

신트라 궁의 굴뚝.





그리고 신트라 궁 앞의 거리들.

영국 시인 바이런이 신트라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던데, 

그래서 이런 간판도 있었다.




신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s)와 케이사다(keijada)는 
꼭 먹어봐야 한다. 

먹는 걸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링크로 대신하지만 

특히 트라베세이루는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간단히 에스프레소와 트라베세이루 두 조각을 먹은 뒤 

무어인의 성으로 출발.



2009. 9. 14. Mon.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어떤 도시든 웬만하면 이틀 이상 머무르는 편이다. 

2004년 파리의 경우는 7박 9일의 일정 내내

파리 한 곳에만 머물렀고 

이번 여행 역시 리스본(신트라를 포함한)과 포르투, 

딱 두 도시만으로 열흘의 일정을 잡았다. 

물론 중간에 코임브라를 갈 것이냐를 놓고 
한참 고민했지만.


아무튼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에는 
체력이 달려서일 수도 있겠고,

하나의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게 
더 재미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어떤 도시든 사실은 1주일 정도는 머물러야

그 도시의 어렴풋한 윤곽이라도 파악된다는 게 
내 생각.


리스본의 사흘 째 밤이다. 

무릇 어수선한 도시일수록 야경이 빛나는 법이다. 

높이 솟은 타워크레인과 
너저분하게 떨어져 나간 건물의 페인트,

깨진 유리창과 무질서한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잠기고

인공조명 만이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 

그게 어쩌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야경이 
멋져 보이는 이유다.


리스본은 약간 다른 의미에서,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같은 의미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위 사진들은 산타 주스타의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에서 찍었다.

앞에 보이는 길이 Rua de Santa Justa이고, 

멀리 산자락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성 조르지 성(Castelo do São Jorge)이다.

오순도순 늘어선 카페의 천막이 다정한 도시.


한편 이 엘리베이터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이건 반쯤 폐허가 된 
카르무(Carmo) 수도원 쪽에서 찍은 사진.



사실 이렇게 전형적인 관광 명소는 

잘 찾지 않는 편인데, 

그런 일종의 습관, 보다는 편견에 가까운 습벽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이번 기회에 드러났다. 

참고로 이 탑의 설계자인 
라울 메스니에 데 퐁사르(Raul Mesnier de Ponsard)는

에펠탑의 설계자인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다.



아무리 찾아도 이 엘리베이터의 전경을 잡은 사진이 없다. 

좀 아쉽지만 입구 부분의 사진으로 대체. 



사실 이 탑은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라는 이름 이외에도

카르무 엘리베이터란 이름이 존재하는데,

이유인즉슨 이 엘리베이터 바로 뒤에 

카르무 수도원(Convent da Ordem de Carmo)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수도원은 1755년 대지진으로 
반쯤 파괴된 뒤 복구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판 가이드에 소개돼 있지만, 
그냥 찾으려면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특히 밤에 찾은 이 수도원의 흔적과 자취는 매우 아름답다.  





수도원이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었다면 
어쩌면 덜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뼈대만이 남아 있으니

오히려 그 구조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달까.





이로써 사흘째 리스본의 밤이 지나간다. 

이튿날인 9월 15일, 화요일은 드디어 신트라로 출발할 예정.

마지막으로 리스본의 야경 사진 하나 더 올리고 

다음 포스트를 기약한다.



2009. 9. 14. Mon.


어쩌면 타임 랙(time lag)이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반드시 공간적인 이동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그곳에서의 시간으로 변환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종의 타임 랙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 리스본은, 
이제 사흘째 오후가 되어서야 익숙한 무엇, 
호감이 가는 무엇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성 조르지 성(Castelo de São Jorge)을 찾으면서부터.


리스본이 전설에 따르자면, 

오딧세우스가 발견했다고 한다지만
전설이요 신화니 그렇다 치고,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 땅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페니키아 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로마인과 무어인들, 
여러 종족들이 번갈아 가며 이 땅을 이용했다. 

강을 굽어보는 언덕이라는 천혜의 지리조건 때문이다. 



나름 성을 찍어보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저 초로의 남성에게 눈이 갔고, 

결과는 사진에 보시는 그대로다. 

어쩌다보니 성의 전경사진이라기보다 

아저씨의 여행 사진이 되어버렸다.

난 그게 더 마음에 들지만.




성 안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이 전시돼 있고,

성의 역사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성도 성이지만 여행은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성을 들어서자마자 울리는 클래식 기타의 음향, 

옛 성곽 벽에 기대어 듣는 음률은 
천상의 그것인 양 아름다왔다.


이윽고 다가가 
기타리스트가 앞에 내어놓은 CD를 두 장 집어들자,

뒤적뒤적, 개인적인 CD 한 장을 찾아
더 얹어주는 센스까지.

리스본에 반은 심드렁하고 반은 어리둥절하던 차에,

이 무명의 기타리스트 덕분에 
리스본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참고로 이 아저씨, 
나름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는 기타리스트다.

이름은  Joao Manuel Bastos.

홈페이지는 www.joaomanuelbastos.com이다. 

그의 작곡 및 연주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성 조르지 성 아래에 위치한

Porta do sol에서의 전경.



역시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집. 

박물관으로도 쓰인다던데 
무엇이 전시돼 있을지 조금은 궁금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장소로 이동.



그 인근의 리스본 시청 건물.

어찌나 길게 지었는지 

광각 24mm인 LX3의 파노라마 모드로도 다 담을 수 없다.



이제 리스본이 조금은 좋아진 나는, 

셔터를 누르는 것이 즐거워진다.






그리고 저녁을 향해 가는 Rossio는 아름다웠고.




2009. 9. 14. Mon.


앞의 포스트에서 잠깐 내비쳤지만, 

사실 리스본의 사흘째 아침은 좀 심드렁했다.

더구나 리스본이든 포르투든 간에

대부분의 성당과 박물관이 월요일에는 쉬다보니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할 지 
계획이 서지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도의 포스트로 올리겠지만, 

아예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월요일쯤에는 포르투든 오비두스든, 
아니면 코임브라를 향해서이든

이동을 하는 날로 정하는 게 효율적이다. 


아무튼 그래도,

먼 타국의 아침은 기분좋은 법.

버스 정류장의 아침도 사람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좀 심드렁하게 말해서 그렇지,

리스본의 골목들은 
아주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한 유럽 古都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포르투갈 문학의 태두라고 볼 수 있는, 

루이스 드 까몽이스의 이름을 딴 광장. 




그리고 마침내 이런 풍경에 이르러선 

좋아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도

이 뒷골목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리스본의 뒷골목들에 특징적인 게 있다면, 

저 개폐식 볼라드(차량 통제용 말뚝)이다.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왼편에 인터폰이 있어서

등록된 운전자가 얘기를 하면 볼라드가 밑으로 내려가면서

차가 통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골목마다 설치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엉성한 도시, 라는 얘기를 했던가.

유난히 공사중인 건물이 많을 뿐더러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건물도 참으로 많다. 

어찌 보면 그게 이 도시의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구경거리가 어디 있는지, 뭘 봐야할지 잘 모르다보니

가장 쉽고 재밌는 구경거리가 바로 트램이다. 

트램을 탄 사람이나 지나가는 걸 바라보는 사람이나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




가이드북에는 
사람도 못 지나다닐 정도의 공간을

신기하게도 빠져나간다.... 는 식으로 
조금은 허풍을 쳐 놓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조금씩 양보하면 
여유있게 다니는 수준이다.

(물론 한 두 구간 정도는 아슬아슬한 곳도 없지는 않지만.)



이날은 사실 사진의 양이 많지 않다. 

내부를 들어간 곳은 거의 없는데다,

유적지(관광지?)보다는 골목들에 더 빠져들었기 때문.

아래는 에스트렐라 바실리카( Basilica da Estrela).




역시나 문을 닫아서 외관만 훑어보고

다시 코메르시우 광장 쪽으로 이동한다. 

코메르시우 광장의 개선문.



그리고 아우구스타 거리.




2009. 9. 13. Sun.


여행을 하면 하루가 길다...기 보다는, 

이번 여행은 마음을 비우고

잘 찍지도 못하면서 좋은 사진에 연연하는 대신

‘전형적인 여행 사진’에 전념키로 했기 때문에

사진이 많아서 포스트가 차고 넘친다.

(한 포스트의 적정한 길이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Sé란, Cathedral의 포르투갈 어휘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교좌 성당.

애초에 Cathedral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 Cathedra에서 유래했고, 

이 단어가 ‘자리’를 뜻했으며 
초기 바실리카에서 주교가 앉는 자리를 
칭했다는 배경설명도 덧붙인다.


아무튼 Sé는 sede란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cathedra와 유사하다.[각주:1]

그래서 리스본에도 하나의 Sé만이 존재하며,

포르투에도 Sé는 하나다. 

나머지는 대부분 Igreja 어쩌고 하는 이름이 
붙어있곤 하다.


아무튼 
리스본의 주교좌성당은 1147년 건립된 것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후 고딕양식의 회랑과 
바로크 양식의 제단 등이 추가된

그야말로 살아있는 건축역사의 박물관이랄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면을 찍는데 상당한 애로가 있다. 
거미줄처럼 트램(시가전차)의 
전깃줄들이 얽혀있는 데다,
위 두번째 사진처럼 
오른쪽의 건물이 시야를 방해한다.
어떻게 보면 관광지스럽다기보다, 
그야말로 리스본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뜻도 되겠다.




내부는... 
사실 사진을 통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성당이라면 모름지기 
저 회중석에 앉아 그 울림과, 
빛의 경계와, 
고요한 성스러움을 느껴봐야 한다. 

아래는 유명하다는, 
장미창. 


그리고 밤이 찾아든 성당. 




여기까지가 리스본 첫날(엄밀히 말하면 도착 둘째날)의 
관광지 순례.

사실 모든 여행에서 
첫날은 일종의 탐색전이 아닌가. 
이 도시가 과연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가, 
과연 나와 이 도시는 잘 맞는가 등등.
하지만 도시가 갖는 
첫인상에 너무 연연하지는 말 것.


리베르다지 대로에서 본 마르케스 드 폼발 광장.



지하철인 메트루(Metro), 
아베니다 역.
단순한 형태와 색상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게 리스본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뭔가 허술했고 엉성했으며, 
정교하거나 섬세하지 못했다.
아무리 1755년의 대지진으로 
거의 전부 파괴된 후 재건한 도시라고는 해도, 
파리가 보여주는 그 우아함이나 
두브로브니크의 낡지만 고풍스러운 매력에 비교하자면
그랬다는 얘기다. 



거리의 예술가? 
좋다.

트램? 
좋다.

그러나 거리의 예술가는 
어느 도시나 있기 마련이고
트램 역시 리스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됐으나 그래서 정겨운 뒷골목들도 
포르투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왜 리스본에 왔을까?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을 때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

하지만 이제 첫날인걸, 
다급해 할 필요는 없어, 
마음을 다잡는다.


아마도 시내 주행용이 아니라 레저용인 듯 싶다. 


어찌 보면 한국과 닮은 구석도 많은 것이, 
시내버스에 붙어있는 이른바 ‘고객헌장’도 그렇다.



  1. Lisbon's cathedral, called the Sé Patriarchal, is the city's oldest church and is one of the largest constructions of Romanesque origin in Portugal. The Portuguese word Sé, meaning cathedral, comes from the word sede meaning bishop's seat. The building stands within the old, densely built quarter on the southern hillside - there is insufficient room available here for the spacious square which would allow the church to appear more striking. <출처: http://www.planetware.com/lisbon/se-patriarchal-p-lisb-se.ht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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