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15. Tue.
신트라 궁을 다룬
변죽만 울리고 말았던 혼성모방과 키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페나 궁전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 궁전은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말이나 글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 해도 이미 외관상 충분히
패러디와 페스티시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무리는 없으리라고 본다.
도대체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 모양새를
어떤 양식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바실리카에서부터 고딕과 로마네스크,
바로크와 아랍, 인도, 중국 등 또다른 문화권에서 흡수된
온갖 양식들이 혼합돼 흥미진진한,
어떤 면에서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건축물이
바로 페나 궁전이 되겠다.
사실 리스본에서의 불편한 감각들,
엉성하다는 느낌들의 실체를 알게 된 건
신트라에 도착해서이고
특히 페나 궁전을 보고 나서다.
생각해보라.
1755년의 대지진으로 리스본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마르케스 데 폼발 남작의 지휘로 재건하기에 이르렀을 때,
남작이든 당시의 정부든 혹은 시민이든
그 목표는 그저 빈 터에 건물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전의 유구한 역사,
그리고 정복과 해양제국의 역사를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수입되었던 모든 건축 양식을 동원해서
복원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며,
이에 따라 온갖 양식들이
자연스레 세월과 함께 섞여든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덜 익숙한 방식으로
혼합되었을 법 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모든 양식들의 본질은
(대지진으로 인해) 사라진 마당에,
그 형체만을 다시 재건하는 것,
본질과 다른 외양을 외삽(外揷)하는 것이
‘키치’에 대한 하나의 정의라면
리스본이라는 도시는 거대한 키치의 도시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영토,
그리고 그 영토와의 교류에서 얻어진
다양한 문화들을 흡수하는 것.
그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문화권들을
20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위로 만들게 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양식들이
프랑스 파리처럼 세련된 방식이 아니라,
페나 궁전의 방식처럼 묘하게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결합된 것을 본다면,
보르헤스와 마르케스, 사라마구 등이 보여준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환상문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두터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쓰는 당사자조차 채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잠시 쉬기로 하고
페나 궁전을 들여다 보자.
정말 예쁜 곳이다.
예쁜 곳인 만큼 기괴한 곳이기도 하고.
한편의 영화라도 찍으라면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시나리오 한편이 저절로 써내려가 질 것 같은 곳.
(아래 사진에 내부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보이기 때문에)
다시 혼성모방과 키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내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랍의 방’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사진촬영 금지구역이어서
사진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글로써라도 설명해 보자면 이 방은,
사실 별 것 없는 방이다.
아랍풍으로 잔뜩 장식품이 전시된 것도 아니고,
그저 벽에 원근법으로 아랍식 궁전의
풍경을 그려 넣은 것이다.
미술사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원근법은 사실 ‘눈속임(trompe-l'oeil)’이라고도 불리웠다.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면,
과연 3차원적인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아니면 마치 만다라나 터키의 양탄자,
이집트의 부조와 같이
2차원적인 그림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인가?
실제로 기둥들이 줄지어 서있을 경우,
우리 눈에는 기둥이 멀어질수록
기둥 간의 간격은 좁아지고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길이도 줄어들게 되지만,
실상 진짜로 기둥이 줄거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원근법,
다시 말해 ‘눈속임’ 자체가
이 세계에 대한 키치적인 모방일 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페나 궁전의 ‘아랍의 방’은
아랍 풍의 완벽한 방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아랍식 궁전에서 바라본 풍경을 모사한 것이라면
(마치 햄버거집 건물을 햄버거 모양으로 짓는 것과 같이)
키치적인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리스본에 있는 사흘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든 이유였다.
키치, 혼성모방, 그리고 키치적인 혼성모방.
키치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못하는 나로서는
리스본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새로운 깨달음.
그리고 그 키치적인 양식이
한편으로는 리스본이 살아남는 방식이었으며
그런 전통으로부터 문화적인 저변을
넓혀왔음을 새삼 깨닫고,
리스본이 조금은 편해진다.
페나 궁은 입구에서 궁전까지 거리가 꽤 된다.
그리고 오르막이다.
그러니 올라갈 때나 혹은 내려올 때 한번쯤은,
궁전의 입장료를 내면 무료로 탈 수 있는
이 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리스본 카드가 있으면 입장료를 할인해 주는데,
입장료 체계가 조금 복잡한 듯 하지만
가장 비싼 것(!)을 끊으면
크게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리스본에 대한, 포르투갈에 대한,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과 중세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움베르토 에코가 이르길,
포스트 모더니즘은 일종의 ‘新 중세’라고 했다던가)
이제는 이번 여행의 진정한 목표였던
대륙의 끝,
호까 곶을 향해 움직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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