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5. Tue.


사실 포르투갈로 떠나면서 머리 속에 떠올렸던 곳은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할 
호까 곶(Cabo da Roca)이다. 


가이드 북에서는 대체로 로카 곶, 이라고 쓰지만

아시다시피 (호나우두; Ronald 에서 보듯) 
단어의 첫 머리 R은 

프랑스어의 R 발음처럼 ‘ㅎ’에 가까운 발음이 된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바위 곶(Cabo da Roca의 뜻이 바로 ‘바위 곶’이다)은

유럽 대륙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륙의 끝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굳이 표현하자면,

‘from far east to far west’ 정도가 되겠다.

나름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카톨릭의 전통이 생생히 살아있는 나라 답게

십자가가 대서양을 마주보고 있는 
호까 곶의 정확한 위치는,

북위 37도 47분, 동경 9도 30분.

기념비에는 서사시인 카몽이스의,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호까 곶에 도착해서야

아, 내가 그리던 포르투갈이 이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꿈꿨던 여행이 호까 곶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고 할까?




혹시 해남 땅끝 마을에 가보셨는지?

우리의 땅끝 마을은 

상당히 다정다감하다는 느낌이 든다. 
육지의 끝이기는 하지만

곧이어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있어

육지와 바다가 첨예하게 맞닿은 곳이라기보다

사이좋게 이어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이곳 호까 곶은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다.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망망한 바다.

먼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금기 머금은 바람에 짓눌려 키가 크지 못한 풀잎들. 

실제로 바람이 워낙 강하다보니 
몸무게가 가벼운 편인 나로서는

종종 발걸음이 어지러워질 정도.



어쩌면 포르투갈인들에게, 

저 먼 수평선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늘 편치만은 않았던, 

아니 오히려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던 에스파냐로 인해 

지중해 뱃길은 막혀 있었고, 

한반도 크기만한 영토 역시 
그다지 비옥하지 않은 탓에

바다로 나서는 것은 
이들에게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대양 항해가 수월한 범선의 개발과 ‘캐러벨 선’, 

그리고 이어지는 ‘대항해 시대’의 역사는

괜히 포르투갈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으리라.




흥미로운 것은

많은 곳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서해안과 같은 해안은 정말 보기 드물다는 것.

대부분의 해안은 대륙이동설을 증명하듯 

이렇게 잘리듯 절벽과 바위로 이뤄진 곳이 많다. 

(하기는 우리나라 동해안도 마찬가지겠다.)


그러니 빙하기에는 육지였을 서해바다가, 

그래서 이 드넓은 갯벌과 그곳에서 사는 동식물의 생태계가

세계적으로 환경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엄청난 자원을 방조제니 기름 유출이니 
말아먹고 있는 게 우리, 인간이다.)



이제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호까곶을 편하게 즐기려면

여름에도 긴팔이 필요하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그 끝 대서양 한복판으로부터 부는 바람이다. 

바람을 무시하지 말 것.


대개는 신트라에서 순환 버스를 타거나 

신트라 역 앞에서 Sctturb 버스를 탄다. 

정류장에도 대충 시간표가 적혀 있지만 

호까 곶 안내소에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 

시간표가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리스본으로 돌아오려면, 

신트라를 경유해도 되지만 

카스카이시(Cascais)를 경유해도 된다. 

막차 시간이 가까와 온다면

신트라든 카스카이시든 아무 곳으로나 출발하는 게 낫다. 

9월의 저녁에 한시간 쯤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으면

얼어 죽을 것 같이 느껴진다. 


이만하면 가이드 북에 나오지 않는 실용적인 정보는

대충 적어놓은 것 같고, 

이날 밤.



드디어 사흘간 미뤄오던 파두 클럽에 갔다. 

론리 플래닛에서도 추천하고, 

미슐랭 가이드에서도 추천하는 나름 관광명소.



바다가 포르투갈의 숙명이요 운명이라고 얘기했던가?

그 운명, ‘fatum’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 
바로 파두(Fado)다.



제일 왼쪽의 콧수염 난 남자가 유명한 ‘기타라’ 연주자인데, 

기타라는 포르투갈에 내려오는 기타의 한 종류다.

이곳에서는 자체제작한 CD도 판매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파두 가수 Mariza도 
이곳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물론 CD에서도 두 개의 트랙에서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 공연은 밤 11시부터 시작한다. 

파두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클럽 라이브가 그렇다. 



......하지만,

파두는 사실 이미 죽은 음악이었다. 

아니, 죽었다기보다는 파두가 노래하는 사우다지(Saudade), 

그 사우다지의 대상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할까. 

내가 간 날도 관객은 반도 차지 않았으며, 

관객 대부분은 50~60대 이상이었다.

(관련 내용은 앞선 포스트,  “포르투갈은 파두의 나라가 아니다 참고.)


아래 보이는 곳이 위 포스트에 언급된 클럽인데 

정말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음악은

아프리카 리듬이 많이 섞인, 세련된 음악.



솔직히 친구라도 한 명 있었다면 

저 클럽에 들어가 보았겠지만, 

비쩍 마른 동양 남자 한 명이 혈혈단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건, 

소심한 나로서는 꿈꾸기 힘든 무엇.


그렇게 나름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호텔로 귀환하다. 

포르투로 떠나기 전 마지막 리스본의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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