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 - 일라이 - 엘리이 영화(소설)에서 이름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영화 중반쯤에 나오는 노인 뿐이다.
영화에서는 자막으로 "일라이"라고 표기되지만,
그리고 영미권에서의 발음 역시 일라이에 가깝지만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것은 "엘리"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늘에,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 말했다는 이 문장은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 노인 혼자만이
다른 여타의 인간과 구분되는 존재라는 뜻.
이름을 가지는 것은 곧 말씀을 가지는 것이다.
(OO가 XX라고 말했다, 고 이야기하려면 OO,
다시 말해 이름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남자가 노인('엘리')에게 아들에 대해 물어보자,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차마 얘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은,
당연하게도 대속자(代贖者)로서 지상에 와 인간들 대신 목숨을 내어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종말을 초래한,
인간들에 대한 원망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신은 없거나(니체 말에 따르면 죽었거나),
혹은 더이상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
심지어 영화에서 기도는,
신을 향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people)을 향해 이뤄진다.
3. 자본주의
이 영화와 자본주의를 연결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다.
맞다.
영화는 설명되지 않은 어떤 사건인가에 의해 종말이 다가온 이후,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극단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외면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잡아먹는 영화(및 소설) 속의 상황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실제로 잡아먹는 것은 아니지만,
늘 자본가가 노동자를,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이 이주 노동자를, 이주 노동자가 불법 이주 노동자를
희생시키면서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올라가려는 건,
그렇다면 '잡아먹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더구나 카트, 분명 노숙자에서 모델을 따왔을 이 물건은
자본주의적 소비체제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아니던가.
카트에 뭔가를 담을 수 있는 자가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도 '자본주의까지 연결하는 건 무리잖아'라고 생각하신다면,
4. 홉스
그래서 우리는 홉스의 유명한,
homo hominis lupus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라는 구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명제는 어떤 면에서는,
그저 현실이 그러하니 강자가 되라는 의미 보다는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늑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회와 공동체가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원래 인간이 늑대니까, 라고 남들을 짓밟기보다는
영화(및 소설) 속 아이처럼
남들과 함께 가려 하고, 남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려 하는 것이
이 명제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인지도 모른다.
5. 가족
하지만 공동체란, 사회란,
우리 뜻대로 움직여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도 있다.
그걸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쁜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면 세상이 좋아질까?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타인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어떤 가족이든 가족, 만이 신뢰의 최소 구성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혈연에 의한 가족이든
아니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일종의 '대안 가족'이든.
6. 불
불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결국 희망은 '불'이다.
인간의 문명에 대한 상징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이다.
(프로메테우스, 또는 영화 "불을 찾아서"를 상기하라),
사실 '남쪽'으로 간다한들,
과연 전지구적인 파멸에 '남쪽'이라고 무사할 리는 없겠지만,
실제로 물리적인 '불'이었든
아니면 (영화에서 그렇듯) 가슴 속에 남아있는
온기어린 '불꽃'이었든 간에
'불'을 간직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 막막한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힌두 신화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불교와 동양철학을 상기한다면
늘 창조는 파괴 뒤에 오기 마련이다.
7. 닉 케이브
영화음악은 닉 케이브가 담당했다.
비고 모르텐슨이나 소년 역의 코디 스미스 맥피,
샤를리즈 테론과 로버트 듀발 등의 배우 캐스팅도 좋았지만,
이 침울한, 그러나 최소한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음악을 누군가 맡아야 한다면
닉 케이브 이상으로 어울리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닉 케이브 자신이 "더 로드"의 이미지 아니던가.
그러나 굳이 토를 달자면,
이 영화는 코맥 매카시 원작의 또다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그랬듯
음악을 쓰지 않고 만들었다면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먹먹한 영화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음악을 썼는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