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지우느라 뜯겨져나간
누군가의 비밀,
혹은 공공연한 적개심

*

Fuji TX-2 | 45mm | Kodak Portra 160VC






반 고흐이거나 가쓰시카 호쿠사이

벽에 일렁이는 물결,

혹은 대담한 손놀림의 흔적

*

Fuji TX-2 | 45mm | Kodak Portra 160VC






예각으로 빛나던 노을 빛
처마의 기울기처럼 기울어가는 태양,
그리고
평행으로 달리던 당신과 나의 목소리

*

Fuji TX-2 | 45mm | Kodak T-Max 400










그리고 이제 곧 가로등이 켜질테고,
햇빛은 마치 절규하듯
잘게 부서지고
갈라지고,


이제 집으로,
집으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

Fuji TX-2 | 45mm | Kodak 100VS






아직 뜨겁지 않던 계절
늘어지던 태양의 질긴 그림자
그,
오후의 빛

*

Fuji TX-2 | 45mm | Kodak 100VS






빗방울을 머금은 바람,
흙먼지와 마른 바람에 시달리던 날들
그 고단한 세월 견디고
다시 생기를 찾기 직전의 풀잎들,

비가 내리기 직전의 그 알싸한 냄새들,

*

왜 사람들은 기상청의 예보가 틀릴 때마다
그토록 분노하는가.
과연 자연이 그렇게 녹록한 것인가.
인간이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면
때되면 꽃피고 또는
비가 오고 바람 불고 낙엽이 지는,

때가 되면 눈이 내리고 얼음 얼고
강이 풀리는

그 신비로운 과정이 얼마나 재미없어지겠는가.

*

때로 우연에 기대어야 마땅할 때도 있는 법이다.
우연에 기대어 사랑스런 날들이 있는 것이다.
삶이란 모종의 신비로움,
예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단조로운 것인가.

나는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골목길들을 사랑하며
기원 모를 상형문자들을 흠모한다.
그토록 불가해한
우리의 삶
만큼이나.






우산을 받쳐들어도 옷깃 젖던
그 겨울,

그래도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것,

지구의 축이 기울어져있다는 것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므로

때가 되면
봄은
오는
것이다





*

실망을 딛고 한 걸음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기.




문수스님 소신공양 소식에
하루종일 눈시울이 젖습니다.

 
한 인간의 탐욕을 위해
다른 생명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

어쩌면 緣이요 業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탐욕의 무한질주를 막아서야 하는 것도
또한 스님과 남겨진 저희들의 緣이요 業이겠지요.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이철수 선생님의 판화가 생각납니다.
낡은 배 한척, 양쪽 끝에
작은 새 한마리와 거대한 불탑이 세워 있었지요.

새 한마리의 작은 무게도
불탑의 그 육중한 가치와 맞먹는 무엇이라는 것,

인간들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하나하나의 생명이
인간들의 문명 만큼이나 가치있다는 것을,
그토록 작은 생명이
부처님 말씀만큼이나 소중다는 것을.


이 땅을 찢고 할퀴고
기어이 절벽으로 내모는 인간들에게,

스님의 죽음이 따끔한 질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물이 나는 것은,
스님께서 3년 공부를 마치고 이리 가시기 전에
이 일들을 막지 못한
  우리들 자신 때문입니다.


스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부디 정토에 가셨기를,
그리고 이곳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다른 생명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의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는 일은 더이상 없기를.





만약 그가 빛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눈이 아파서 시선을 돌려 자기가 불편없이 볼 수 있는 대상들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물건들보다 더 선명하다고 생각하겠지?
— 플라톤, "국가론", 7


*

진실은 늘
모종의 불편함을 동반하기에,

사람들은 흔히 자기 합리화의 이름으로
거짓과 타협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리곤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實在보다 더 진짜 같다고 믿으며
몰상식 속으로 빠져들다 못해
스스로가 몰상식 자체가 되기도 한다.

2010년,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가
또다른 동굴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울러

당신에게도.








잠시 등돌리고 있는 것 뿐이죠

쇠털 같이 많은 날들을 우리는 함께 했어요
코와 주둥이를 맞대고 밥그릇도 나눠 쓰는 우리가
설마 사이가 나쁘다는 낭설은 말아 주세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다 보면 표정도 닮는다지요
웅크리고 앉은 자세마저 우리는 남매 같아요

그나저나 이 줄은 누가 묶어 놓았을까요,
우리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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